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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 계좌이동제 시행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금융사 간 이전 서비스(계좌이동제)가 시작됐지만, 홍보 부족과 금융사 직원들의 매뉴얼 숙지 미숙 등으로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CNB가 ISA 계좌이동제 시행 첫날인 18일 시중은행과 증권사 몇 곳을 대상으로 실태를 단독 점검했다. (CNB=도기천 기자)


ISA 대부분 ‘1만원 통장’…계좌이동 의문 


해지 등록에 2시간…신규개설까지 3~5일 


직원들 매뉴얼 숙지 미숙, 고객들 ‘불편’ 


2개월 전 평소 알고 지내던 A은행 지점의 한 직원을 통해 ISA계좌를 만들었던 직장인 이모(47) 씨는 수익률이 높은 상품으로 갈아타기 위해 이날 한국투자증권을 찾았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한국투자증권을 찾아 ISA계좌를 개설하기만하면 자동으로 A은행 계좌가 해지되는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과정은 의외로 복잡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이씨로부터 계좌이전등록신청서 등을 받아 이씨 계좌가 있는 A은행 지점에 통보한다. A은행은 이씨에게 계좌해지 의사가 정확한 지를 전화로 물은 뒤, 이관 신청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전산에 입력한다. 


이후 이씨의 신탁계좌를 환매해서 이자와 세금, 수수료를 정산한 뒤 이씨의 입출금통장을 통해 한국투자증권에 이씨가 신설한 ISA계좌로 이체 시켜준다.


시행 첫날이다 보니 이런 복잡한 과정이 순조로울 리가 없었다. 증권사와 은행 간에 각종 서류를 팩스를 주고받으며 전산에 해지등록을 하는 데만 2시간 넘게 걸렸다. 


여기까지가 끝이 아니었다. 


이씨의 A은행 계좌가 완전 해지돼야 증권사에 새 계좌를 틀 수 있는데, 해지까지는 며칠이 소요된다. 계좌 이전은 기존 계좌에 담긴 금융상품을 환매 또는 해지하고 나서 새 계좌를 개설하는 방식이어서 이전 신청 후 길게는 5영업일 이상 걸릴 수 있다. 


금융상품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략 예·적금만 보유하고 있으면 2~3영업일, 국내 주식형펀드를 보유하고 있다면 4~5영업일이 걸릴 수 있다. 계좌 내 모든 자산의 환매가 이뤄지고 나서 자금이 이체돼야 계좌 이전이 완료된다. 계좌이전이 완료된 시점부터 신규계좌가 운영된다.


이렇게 시일이 걸리는 이유는 ISA계좌만의 특성 때문이다. ISA는 판매금융사가 수익률이 높은 타금융사 상품을 가져와서 연동시키는 구조다. ISA가 ‘바구니’라면 금융사들은 그 바구니에 담기 위한 ‘계란’을 외부에서 도입하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해지할 때는 은행이 해당 상품을 만든 타금융사와 정산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런 절차 때문에 해지까지 상당 시일이 걸리는 것이다.


신한은행 콜센터 관계자는 18일 CNB에 “ISA계좌의 당일 해지와 개설은 사실상 힘들다. 상품별로 차이는 있지만 최소 2~3일은 지나야 신규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은행 직원은 “(계좌이동제를 이용하지 않고) 원래 가입한 금융사에 가서 ISA 통장을 해지한 뒤, 새로 가입할 금융사를 찾는 게 오히려 시간을 줄일 수도 있다”고 귀뜸했다. 두 번 발걸음 하는 불편이 있지만, 은행 간의 번거로운 확인 절차를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ISA 계좌이동제 개념도. (자료=금융위원회)


초저금리·주식시장 침체 수익률 ‘꽁꽁’


이처럼 계좌이동 자체도 불편하지만, 대부분 ISA계좌가 불완전판매 형태로 급조된 ‘깡통계좌’ 성격이다 보니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지 의문이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민병두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ISA 금융사 가입금액별 계좌 현황 자료’에 따르면 ISA 출시 이후 한 달간 은행권에서 개설된 계좌 가운데 74.3%인 101만3600여개가 가입액 1만원 이하였다. 같은 당 박용진 의원이 지난 11일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투자성향 분석 절차를 건너뛴 ISA 가입자가 5개 시중은행에서 29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융사는 고객에게 투자 경험과 원금손실 감내 여부 등을 묻는 투자성향 분석을 반드시 해야 한다.  


하지만 NH농협은행은 가입자 18만7606명 가운데 64.9%인 12만1939명의 투자성향 분석이 생략됐다. KEB하나은행, KB국민은행, IBK기업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순으로 생략한 경우가 많았다.   


이는 금융사 간 과당경쟁으로 직원들이 실적할당에 시달리며 빚어진 결과다. 대부분이 친인척과 지인을 통해 만들어진 ‘1만원짜리 계좌’라는 점에서, 이탈율(계좌이동비율)이 높지 않을 것으로 금융업계는 보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오늘 처음 ISA 계좌이동이 시행됐지만 이에 대해 물어보는 고객이 거의 없다”며 “사상최저의 저금리에다 주식시장이 침체돼 있어, 지금 분위기로 봐선 계좌를 옮기는 고객이 많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더라도 금융사들 입장에선 다시 비상이 걸린 상태다.  


한 은행직원은 “내가 가입시킨 고객 중에 다른 곳으로 계좌를 옮기는 경우가 있는지 전화를 돌려가며 단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직원에 따르면 본인을 통해 가입한 고객이 타금융사로 계좌를 옮기면 본인 실적에서 누락된다. 


은행연합회는 오는 27일 계좌이동제에 대비한 긴급회의를 열어 은행원들에 대한 ISA 실적할당 중단과  은행KPI(핵심성과지표)에 ISA 실적반영을 금지하는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은행연합회는 KB국민·신한·우리·NH농협·KEB하나·SC제일·기업·KDB산업·씨티·전북은행 등 10개 은행장이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중 일부는 실적할당 금지 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